두려움은 결과보다 먼저 우리를 벌한다

 


두려움은 결과보다 먼저 우리를 벌한다

두려움이 닥칠 때(“일주일 안에 죽을지도 몰라”, “사건으로 감옥에 갈지도 몰라”) 사람은 대개 결과를 무서워한다고 말하지만, 실제로는 그보다 앞서 두려움 자체가 우리를 무너뜨립니다.
결과는 아직 오지 않았는데, 마음은 이미 재판을 끝내 버리고 스스로에게 형을 선고해 버리니까요.


“한 달만 주십시오. 왕의 말이 하늘을 날게 하겠습니다.”

어떤 사형수가 왕에게 말합니다.
“한 달만 말미를 주시면, 왕의 말이 하늘을 날게 하겠습니다.”
주변 사람들은 비웃습니다. 말이 어떻게 날겠냐고요. 그런데 사형수는 담담히 답합니다.
“혹시 알아요? 정말 날지도. 그리고 한 달 사이에 왕이 죽을 수도 있잖아요. 그러면 나는 사면될 수도 있고요.”

이 이야기가 주는 교훈은 단순합니다.
세상일은 아무도 모른다. 그런데 두려움은 마치 “이미 확정된 미래”처럼 우리를 속입니다.
아직 확정되지 않은 일에, 우리는 확정된 고통을 먼저 당합니다.


승승장구하던 사람도, 한순간에 내려앉는다

우리는 종종 봅니다. 잘나가던 사람이 갑자기 무너지는 일. 반대로 끝난 줄 알았던 사람이 뜻밖에 다시 일어나는 일.
그래서 큰 부자들, 큰 권력자들 중에 오히려 더 겸손한 사람이 있는 이유도 여기 있습니다.
그들은 “세상이 내가 통제할 수 있는 곳이 아니다”라는 사실을 몸으로 배웠기 때문입니다.

삶을 너무 ‘serious’하게 붙잡고 있으면, 작은 흔들림도 인생 전체의 붕괴처럼 느껴집니다.
그러나 삶은 원래 흔들립니다. 누구에게나 고난은 옵니다.


이겨내려 애쓰기보다, 담담히 받아들이고 견디기

우리가 환란을 견디지 못하는 이유는 종종 환란이 “너무 커서”가 아니라, 겁을 먹어서입니다.
두려움은 고난에 “상상”을 덧붙여서 크기를 키웁니다.
그래서 고난은 실제보다 더 무겁게 느껴지고, 우리는 아직 오지 않은 날들까지 미리 무너집니다.

성경도 비슷한 방향을 말합니다.

  • “내일 일을 위하여 염려하지 말라” (마태복음 6장)

  •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지나도 “해를 두려워하지” 않는 이유는, 상황이 쉬워서가 아니라 동행하심 때문입니다(시편 23편).
    고난은 피할 수 없어도, 두려움에 끌려가며 고난을 두 번 살 필요는 없습니다.


두려움이 올라올 때, 마음을 붙드는 5가지 실천

  1. 두려움을 문장으로 이름 붙이기: “나는 지금 ‘미래를 확정하려는 공포’를 느낀다.”

  2. 확정된 것/불확정한 것 구분하기: “확정은 없다. 가능성만 있다.”

  3. 오늘 할 수 있는 최소 행동 하나: 전화 한 통, 정리 한 장, 상담 예약 하나.

  4. 혼자 숨기지 않기: 믿을 만한 사람과 나누기(필요하면 전문가 도움).

  5. 기도의 한 문장: “주님, 제 마음이 겁에 끌려가지 않게 붙들어 주세요.”


고난은 옵니다. 그러나 두려움이 우리를 대신 살게 두지 맙시다.
담담히 받아들이고, 오늘 하루만 견디면 됩니다. 생각보다 견딜 만합니다. 우리가 무너지는 지점은 대개 현실이 아니라, 현실에 붙인 ‘공포의 상상’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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