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분으로 살던 사람이 책임으로 깨어나는 순간

 


기분으로 살던 사람이 책임으로 깨어나는 순간

평범한 사람은 대개 처음에는 기분에 살고 기분에 죽는다. 마음이 들뜨면 세상은 넓고, 마음이 꺾이면 하루가 무너진다. 그래서 우리는 “오늘은 컨디션이 안 좋아”라는 말로 내일을 미루고, “기분이 내키면”이라는 조건을 삶의 핸들처럼 붙잡는다. 하지만 결혼하고 아이가 생기는 순간, 인생은 다른 규칙으로 작동하기 시작한다.

그때부터 삶의 중심은 ‘내 기분’이 아니라 ‘누군가의 생존’이 된다. 아이는 엄마의 의욕이 올라오길 기다려 주지 않는다. 배고픔은 철학을 이해하지 못하고, 안전은 감정의 파도를 고려하지 않는다. 어제 울었던 사람도 오늘 밥을 해야 하고, 마음이 텅 빈 날에도 아이의 체온을 확인해야 한다. 새벽에 열이 오르면 “오늘은 쉬고 싶다”는 생각은 사라지고, 약국 문 여는 시간부터 계산하게 된다. 이때 사람은 깨닫는다. 기분은 날씨처럼 변하지만, 돌봄은 멈추면 안 되는 일이라는 것을.

그래서 공자의 말, “즐기는 사람을 노력으로 이기지 못한다”는 문장은 엄마 앞에서 다른 의미로 다시 읽힌다. 좋아서 하는 사람은 강하다. 그러나 엄마의 강함은 ‘즐거움’에서 나오지 않는다. 즐기지 못하는 날에도 해야 하니까 하는 힘, 피곤해도 멈출 수 없어서 움직이는 힘, 체면과 자존심을 뒤로 미루고 현실을 먼저 붙드는 힘이다. 아이가 굶어 죽게 생겼는데 놀러 갈 엄마가 어디에 있겠는가. 그 앞에서 자존심은 ‘사치’가 되고, 책임은 ‘본능’이 된다.

우리는 종종 엄마의 이런 힘을 “모성은 위대하다”라는 말로만 칭찬하고 끝낸다. 하지만 엄마의 위대함은 감탄의 대상이기 전에 ‘구조의 결과’다. 아이는 매일 밥을 먹어야 하고, 매일 씻어야 하고, 매일 보호받아야 한다. 그 반복이 엄마를 훈련시키고, 그 훈련이 결국 한 사람의 인간을 바꾼다. 그래서 엄마는 도덕 강의를 듣고 책임을 배우지 않는다. 책임이 엄마의 하루를 붙잡고, 그 하루가 다시 엄마의 인격을 만든다.

물론 엄마가 아니어도 삶의 깊이를 아는 사람은 있다. 고난, 간병, 생계, 공동체의 짐을 지며 책임을 배운 이들도 많다. 다만 ‘엄마’라는 역할은 그 책임을 가장 일상적인 형태로, 가장 반복적인 방식으로, 가장 날것의 현실로 사람에게 주입한다. 그래서 엄마가 되어 보면, “인생을 안다”는 말이 얼마나 가벼운지 알게 된다. 지식은 설명할 수 있지만, 책임은 변명하지 못한다.

결국 성숙이란 기분을 없애는 일이 아니라, 기분 위에 구조를 세우는 일이다. 엄마의 하루는 감정이 아니라 밥 시간과 약 시간과 등교 시간으로 굴러간다. 그리고 그 단단한 반복이 사람을 다시 세운다. 기분으로 살면 기분과 함께 무너지지만, 책임으로 살면 무너져도 다시 움직인다. 오늘 우리의 질문은 이것이다. 나는 ‘기분’이 아니라 ‘책임’이 움직이는 구조를 내 안에 세우고 있는가?

기분은 나를 설명하지만, 책임은 나를 증명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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