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안에게 틈을 주지 않는 신앙: 기도에서 섬김으로

 


불안에게 틈을 주지 않는 신앙: 기도에서 섬김으로

교회에는 늘 걱정과 염려로 마음이 무너진 채 예배당 문을 여는 분들이 있다. 그분들은 “위로”가 필요해서 나온다. 어쩌면 그 위로가 없으면 한 주를 버티기 어렵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런 분들에게 “작은 봉사라도 해보세요”라고 권하면 대답은 거의 같다. “내 코가 석 자입니다. 지금은 그럴 시간이 없어요.” 그 말이 이해되지 않는 것은 아니다. 인생이 힘들면 무엇이든 더 얹는 것이 부담처럼 느껴진다. 하지만 성경은 우리에게 아주 분명한 한 문장을 남긴다. “마귀에게 틈을 주지 말라.” 그리고 나는 이 말이 영적인 세계만이 아니라, 우리의 일상과 마음의 습관에도 그대로 적용된다고 믿는다.

불안은 틈을 타고 들어온다. 큰 사건이 아니라 작은 방치, 작은 고립, 작은 무질서에서 자라난다. 특히 사람이 멈춰 있을 때 불안은 더 힘을 얻는다. 몸이 멈추면 생각이 과열되고, 생각이 과열되면 감정이 온몸을 붙잡는다. 그래서 불안을 이기는 길은 때로 “마음을 다잡자”는 결심이 아니라, 지금 손에 잡히는 일을 붙드는 행동에서 시작된다. 불안이라는 ‘마귀’가 스며들 여지를 줄이는 것, 그것이 ‘틈을 막는 삶’이다.

이 원리를 보여주는 이야기가 있다. 남편을 잃고 깊은 상실 속에 있던 한 여인이 있었다. 그녀는 늘 침대에 누워 있었고, 마음은 불안으로 가득했다. 그런데 전쟁이 터지면서 그녀는 간호원으로 차출되어 중노동을 하게 되었다. 듣기만 해도 더 불행해질 것 같은 상황인데, 결과는 반대였다. 그녀는 불안을 느낄 틈이 없어졌고, 오히려 잠을 잘 자게 되었으며, 건강까지 회복했다. 그 뒤로 그녀는 삶의 태도를 바꾸었다. 가능한 한 부지런히 살고, 남을 돕는 일을 지속했다. 삶의 문제들이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었지만, 그녀의 삶은 존경을 얻고 기쁨이 더 많아졌다. 결론은 단순했다. ‘불안을 없애려 애쓰는 삶’이 아니라 ‘불안이 자랄 틈이 없는 삶’이 그녀를 살렸다.

그런데 교회 안에서는 비슷한 일이 자주 벌어진다. 걱정과 염려로 예배당에 나오면서도, 섬김을 권하면 움츠러든다. “지금은 못 합니다. 힘들어서요.” 그러나 또 어떤 분들은 삶이 어려운데도 봉사를 쉬지 않는다. 그들의 형편이 갑자기 확 좋아진 것은 아닐 때가 많다. 경제적으로 넉넉해진 것도 아니고, 가족 문제가 단숨에 해결된 것도 아니다. 그런데도 그들은 쉽게 무너지지 않는다. 여전히 힘든데도 중심이 있다. 그 이유는 간단하다. 봉사가 문제를 ‘해결’해 주지는 않지만, 믿음을 ‘지탱’해 주기 때문이다. 봉사는 고난을 없애는 도구가 아니라, 고난 속에서 사람을 끝까지 서 있게 하는 기둥이다.

기도만 하고 봉사를 거절하는 마음은 종종 ‘지금 너무 힘들어서’가 아니라, 불안이 나를 안쪽으로만 말아 넣기 때문에 생긴다. 불안이 깊어질수록 사람은 ‘나’에게 갇힌다. 내 문제, 내 두려움, 내 부족함, 내 미래… 그러다 보면 신앙조차 “하나님, 이것만 해결해 주세요”라는 한 문장에 갇혀 버린다. 하지만 섬김은 그 문을 열어젖힌다. 시선을 나에게서 이웃에게로 옮기고, 내 감정에서 하나님의 뜻으로 옮긴다. 그 순간 불안이 자랄 공간은 좁아진다. 봉사는 시간을 빼앗는 것이 아니라, 불안이 침투하는 틈을 메우는 ‘영적 노동’이 된다.

물론 여기서 말하는 봉사는 ‘큰 헌신’이 아니다. “내 코가 석 자”인 사람에게 필요한 것은 거대한 결단이 아니라 아주 작은 순종이다. 예배 후 의자 한 줄만 정리해도 좋다. 누군가에게 안부 문자 하나 보내도 좋다. 주보를 나누거나, 한 사람의 기도 제목을 받아 3일만 중보해도 좋다. 중요한 것은 규모가 아니라 방향이다. 불안이 내 마음을 안으로 조여 올 때, 나는 한 걸음 밖으로 나가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작은 행동을 붙든다. 그 행동이 바로 ‘틈을 막는 믿음’이 된다.

성경이 말하는 “마귀에게 틈을 주지 말라”는 경고가 사실은 희망인 이유가 여기에 있다. 틈은 막을 수 있다. 불안이 들어오는 문도 닫을 수 있다. 그 문을 닫는 가장 현실적인 방법 중 하나가 ‘현재의 자리에서 충실하게 움직이는 삶’이며, 그 움직임의 가장 아름다운 형태가 ‘섬김’이다. 기도는 마음을 하나님께로 올려 드리고, 섬김은 그 기도를 땅 위의 삶으로 내려오게 한다. 기도만 있는 신앙은 쉽게 무너지지만, 기도와 섬김이 함께 가는 신앙은 어려움 속에서도 사람을 끝까지 붙든다.

그러니 나는 불안한 분들에게 이렇게 말해주고 싶다. “지금 힘드신 것 압니다. 그래서 더더욱, 작은 봉사 하나만 시작해 보세요. 불안을 없애려 애쓰지 말고, 불안이 자랄 틈을 없애는 삶으로 들어가 보세요.” 그때부터 신앙은 단지 위로를 받는 장소가 아니라, 인생을 견디는 힘이 된다. 그리고 놀랍게도, 그 힘은 상황이 좋아져서 생기는 것이 아니라, 어려움 속에서도 계속 섬길 때 자라난다. 이것이 교회가 주는 가장 현실적인 치유이며,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시는 가장 견고한 평안이다.

댓글

이 블로그의 인기 게시물

두려움은 결과보다 먼저 우리를 벌한다

한국 원화의 가치가 떨어지는 이유

뉴스는 세상 소식이고, 일상은 하나님이 내게 맡기신 자리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