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트레스를 주는 뉴스는 마약과 비슷하다. 경제 위기, 전쟁, 정치 갈등 같은 소식들

 


스트레스를 주는 뉴스는 마약과 비슷하다. 경제 위기, 전쟁, 정치 갈등 같은 소식들은 한 번 빠져들면 끊기 어렵고, 끊으려 하면 금단현상처럼 불안과 무료함이 밀려온다. 우리는 이미 삶의 여러 영역에서 충분히 힘겨운 일을 겪고 있음에도, 또다시 화면을 켜고 ‘오늘은 또 무슨 일이 터졌나’를 확인한다. 이 모순적인 행동은 단순한 의지 부족이 아니라, 인간의 뇌와 심리 구조와 깊이 얽혀 있는 문제다.

인간의 뇌는 원래 위험과 변화에 민감하도록 설계되어 있다. 특히 부정적인 정보, 위협적인 정보일수록 더 강하게 시선을 잡아끈다. 원시 시대에는 이런 경향이 생존에 도움이 되었겠지만, 24시간 뉴스 채널과 실시간 알림이 존재하는 지금은 정반대 결과를 낳는다. 화면 속 세상은 항상 불타고 있고, 누군가는 망하고 있으며, 우리의 미래는 늘 비관적인 것처럼 보인다. 이때 분노와 불안, 공포는 일종의 강한 자극이 되어 뇌를 쾌락 회로와 연결한다. 불안하면서도 자꾸 손이 가게 되는, 모순적인 ‘뉴스 중독’이 이렇게 만들어진다.

문제는 우리가 이런 뉴스를 본다고 해서 현실을 바꿀 수 있는 경우가 드물다는 점이다. 대부분의 사람은 금리 정책을 결정할 수도, 국제 분쟁을 중재할 수도 없다. 그럼에도 우리는 ‘알고 있어야 한다’는 의무감과 ‘모르고 있으면 불안하다’는 두려움 사이에서 채널을 넘기고 스크롤을 내린다. 이렇게 정보는 쌓이는데, 행동으로 이어지지 못하면 마음에는 무력감만 남는다. 아는 것은 많아졌지만, 할 수 있는 일은 별로 없는 상태, 바로 이것이 정신을 갉아먹는 지점이다.

그래서 우리는 어느 순간 결심한다. “이제 그만 봐야겠다. 끊어야겠다.” 실제로 며칠, 몇 주 뉴스를 줄이면 마음이 한결 가벼워지는 경험을 한다. 하지만 문제는 그 다음이다. 어느 저녁, 할 일이 애매하게 비는 순간이 온다. 조용하고, 특별히 재미있는 것도 없다. 그때 찾아오는 감정이 바로 ‘무료함’이다. 사람은 어정쩡한 공허를 잘 견디지 못한다. 아무것에도 신경 쓰지 않고 있는 상태를 불안해한다. 그때 뇌가 가장 쉽게 떠올리는 선택지가 있다. 바로 강한 자극, 익숙한 자극, 금방 손에 잡히는 자극, 다시 말해 뉴스다. 이렇게 해서 “끊었다가 다시 보는” 반복이 시작된다.

이 악순환을 끊으려면 단순히 “보지 말아야지”라는 결심만으로는 부족하다. 마음이 비어 있을 때, 그 빈틈을 대체할 다른 대상을 준비해 두어야 한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몰입’이다. 영화를 좋아한다면 영화에 깊이 빠져들어라. 단순 소비를 넘어 감독의 연출, 상징, 시대 배경까지 음미해도 좋다. 예전에 책에 빠졌던 경험이 있다면 다시 책을 곁에 두고 한 시간만이라도 온전히 읽는 시간을 만들어라. 글쓰기, 그림 그리기, 악기 연주처럼 무언가를 ‘창조하는’ 활동도 강력한 대안이 될 수 있다. 뇌는 시간이 걸리더라도, 뉴스가 아닌 것에서도 충분한 자극과 만족을 얻는 법을 다시 배울 수 있다.

나이가 들수록 이 문제는 더 중요해진다. 스트레스는 만병의 근원이라고 흔히 말하지만, 이는 단순한 수사가 아니다. 만성 스트레스는 수면을 망가뜨리고, 혈압과 혈당을 올리고, 우울과 불안을 키운다. 특히 노년에는 회복력이 떨어지기 때문에, 쓸데없는 걱정과 과도한 분노는 곧바로 건강의 악화로 연결되기 쉽다. 세상 소식에 완전히 눈을 감으라는 말은 아니지만, 내 몸과 마음을 해치면서까지 모든 사건을 쫓아다니는 것은 현명하지 않다. 내 수명을 줄여서 얻어야 할 만큼 소중한 뉴스는 거의 없다.

여기서 명심해야 할 점이 하나 있다. 보통 사람은 현실 전체를 바꿀 수 없다. 이 사실을 인정하는 것은 패배가 아니라 출발점이다. 세상을 한 번에 구하려 들면 좌절하지만, 내가 손댈 수 있는 작은 영역부터 책임지겠다고 마음먹으면 비로소 평온이 찾아온다. 내 가족, 이웃, 직장, 동네, 그리고 내 몸과 마음. 여기에 에너지를 쏟는 것만으로도 이미 의미 있는 변화다. 뉴스에 분노하며 밤을 새우는 것보다, 내 주변 사람 한 명에게 조금 더 친절해지는 편이 세상을 더 나은 방향으로 움직일 가능성이 크다.

결국 중요한 것은 방향이다. 세계의 비극에 중독되어 무력감과 분노 속에 살 것인가, 아니면 내가 할 수 있는 좋은 일과 나를 살게 하는 기쁨에 몰입하며 살 것인가. 우리는 모두 하루 24시간이라는 같은 자원을 가진다. 그 시간을 어디에, 무엇을 위해 쓸 것인지는 각자의 선택이다. 스트레스를 양산하는 뉴스의 흐름에서 한 걸음 비켜나, 나 자신의 삶과 소소한 선(善)에 집중하기 시작할 때, 비로소 우리 개인의 정신은 가벼워지고, 세상도 아주 조금은 좋아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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