숏폼의 유혹을 넘어, 인지적 지구력을 회복하는 뇌의 우회로
숏폼의 유혹을 넘어, 인지적 지구력을 회복하는 뇌의 우회로
2024년 옥스퍼드 대학이 선정한 올해의 단어는 인공지능(AI)도, 전쟁도 아닌 '브레인 로트(Brain Rot, 뇌 썩음)'였다. 이는 현대인이 짧고 자극적인 콘텐츠에 매몰되어 인지 기능이 저하되는 현상을 날카롭게 꼬집는다. 우리가 무심코 넘기는 15초짜리 숏폼 영상들은 단순히 시간을 뺏는 것을 넘어, 우리의 뇌 구조와 행복을 느끼는 방식 자체를 근본적으로 뒤흔들고 있다.
숏폼 중독이 무서운 이유는 뇌의 ‘도파민 시스템’을 정교하게 해킹하기 때문이다. 흔히 도파민을 행복 호르몬이라 오해하지만, 뇌과학적 관점에서 도파민은 '기대감의 호르몬'이다. 손가락을 까딱하는 미미한 노력으로 15초마다 새로운 자극과 보상을 얻게 되면, 우리 뇌는 "가성비가 최고"라고 판단하며 다음 영상에 대한 끝없는 기대감의 굴레에 빠진다. 문제는 이러한 짧은 호흡에 익숙해진 뇌가 긴 글을 읽거나, 타인의 감정을 헤아리고, 복잡한 문제를 끈질기게 해결하는 '인지적 지구력'을 잃어버린다는 점이다. 인생은 100m 달리기가 아니라 마라톤임에도 불구하고, 숏폼에 절여진 뇌는 조금만 지루해도 견디지 못하는 상태가 되어버린다.
하지만 뇌과학은 우리에게 절망 대신 '뇌 가소성'이라는 희망을 제시한다. 성인이 된 후에도 뇌세포는 쓰면 쓸수록 강화되며 새로운 연결망을 만들어낸다. 그 대표적인 사례가 바로 '메리 수녀'의 이야기다. 그녀는 101세까지 청년 못지않은 기억력과 인지 기능을 유지하며 활기차게 살았으나, 사후 부검 결과 그녀의 뇌는 말기 치매 환자와 다를 바 없을 정도로 독성 물질이 가득하고 해마가 위축되어 있었다. 의학적으로는 대소변도 가리지 못해야 할 상태였음에도 그녀가 총명함을 유지할 수 있었던 비결은 바로 '인지 예비능', 즉 뇌의 우회로에 있었다.
메리 수녀는 평생 동안 독서, 명상, 정원 가꾸기, 가르치기 등 뇌의 다양한 부위를 골고루 자극하는 활동을 멈추지 않았다. 기억은 단순히 서랍 속에 정보를 넣는 과정이 아니라 거미줄처럼 촘촘한 연결망을 만드는 과정이다. 그녀의 뇌는 수천, 수만 개의 거미줄로 칭칭 감겨 있었기에, 알츠하이머라는 가위가 몇 가닥의 줄을 끊어놓아도 전체 그물망은 무너지지 않았던 것이다. 반면 숏폼만 반복적으로 시청하는 행위는 뇌의 특정 부위(시각 정보 처리 및 쾌락 회로)만 혹사시키는 일종의 '뇌 편식'이며, 이는 행복의 역치를 비정상적으로 높여 산책이나 대화 같은 소소한 즐거움을 더 이상 행복으로 느끼지 못하게 만든다.
도파민에 절여진 우리의 뇌를 구하고, 백세 시대에 총명한 뇌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구체적인 실천이 필요하다. 첫째, '인지적 지구력'을 의도적으로 키워야 한다. 하루 30분 만이라도 배속 없이 영상을 끝까지 보거나 책 한 챕터를 읽으며 전두엽의 통제력을 회복해야 한다. 둘째, '디지털 디톡스' 시간을 가져야 한다. 핸드폰 없이 산책하거나 손을 움직여 요리나 뜨개질을 할 때, 스트레스에 지친 해마는 비로소 휴식을 취하고 세포를 복구할 시간을 벌게 된다. 셋째, '세 줄 일기'를 쓰는 습관이다. 단순히 사실을 나열하는 것이 아니라 감각과 감정을 연결해 풍성한 문장을 써 내려갈 때, 뇌의 구석구석을 연결하는 거대한 다리가 놓인다.
결국 뇌를 돌보는 행위는 단순히 먼 미래의 치매를 예방하기 위한 보험이 아니다. 숏폼에 빠져드는 근본적인 원인이 현실의 무의미함에 있다면, 우리는 오늘 하루를 의미 있게 만드는 활동을 통해 뇌를 깨워야 한다. 오늘 30분 책을 읽고, 스마트폰 없이 걷고, 일기를 쓰는 이유는 백한 살의 나를 위해서가 아니라, 오늘 밤 내가 성장했음을 느끼고 내 삶이 의미 있었음을 확인하기 위해서다. 그렇게 쌓인 의미 있는 하루들이 모여 우리 뇌 속에 견고한 우회로를 만들고, 어떤 풍파에도 흔들리지 않는 삶의 지탱목이 되어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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