긴장이 풀릴 때 찾아오는 균열
긴장이 풀릴 때 찾아오는 균열
우리는 종종 이렇게 말한다. “이제 그동안 열심히 달려왔으니, 잠시 긴장을 풀고 여유 있게 살자.” 이 말은 인간적으로 들린다. 쉼 없이 달려온 자신에게 건네는 작은 위로이자, 삶의 균형을 되찾으려는 자연스러운 충동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긴장을 푼다’는 말에는 언제나 한 가지 위험이 숨어 있다. 그것은 무심코 풀어진 삶의 끈 사이로 스며드는 나태와 무감각이다. 그것이 일정한 한계를 넘는 순간, 우리는 자신이 언제부터 무너지고 있었는지도 모른 채 서서히 균열 속으로 빠져들게 된다.
댐이 한순간에 무너지는 경우는 드물다. 눈에 잘 띄지 않는 작은 금이 생기고, 그 사이로 스며든 물이 압력을 키워 결국 거대한 붕괴로 이어진다. 인간의 마음도 다르지 않다. 긴장이 사라진 자리에 생기는 그 ‘작은 크랙’은 처음엔 아무렇지 않아 보인다. 그러나 이 작은 균열이 계속 방치될 때, 그것은 서서히 의지와 통제력을 무너뜨리고, 나중에는 돌이킬 수 없는 변화를 초래한다. 우리가 경계해야 할 것은 바로 이 ‘무장의 해제 상태’다. 긴장이 완전히 해제된 순간, 인간의 정신은 근육을 잃은 몸처럼 느슨해지고, 방향 감각을 상실한다.
물론 끊임없는 긴장 속에만 사는 것도 불행한 일이다. 팽팽한 줄을 계속 당기면 결국 줄이 끊어지는 법이다. 문제는 긴장이 아니라, 긴장을 잃어버린 채 자신의 상태를 자각하지 못하는 것이다. 여유롭다는 것과 방심한다는 것은 분명히 다르다. 전자는 자신을 다스릴 줄 아는 사람의 여유이고, 후자는 스스로를 잃어버린 사람의 무방비다. 같은 휴식의 순간이라도 전자는 재충전의 시간이고, 후자는 무너짐의 시작점이 된다.
많은 성공한 사람들이 이유 없이 무너지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성공은 종종 스스로에 대한 신뢰를 낳고, 그 신뢰는 어느새 확신으로, 그리고 확신은 오만으로 바뀐다. 그때부터 긴장은 사라지고, 경계선은 흐려진다. 그들은 자신이 이미 안전한 위치에 도달했다고 믿지만, 사실 그 순간이 바로 균열이 시작되는 지점이다. 눈앞의 적보다 더 무서운 것은, 자신에게서 경계심이 사라지는 순간이다.
삶에는 일정한 ‘내적 긴장’이 필요하다. 그것은 불안이나 스트레스가 아니라, 자신을 깨어 있게 만드는 힘이다. 긴장은 목적의식과 자기 점검을 유지하게 하고, 인간으로 하여금 성장하도록 자극한다. 반대로 긴장이 사라진 상태, 즉 무기력과 자기위안 속에 안주하는 삶은 겉으로는 편안해 보이지만, 속으로는 조금씩 부패한다. 인간의 정신적 근육은 사용하지 않으면 약해지고, 자각이 사라지면 결국 통제력도 함께 사라진다.
그러므로 삶의 균형이란 단순히 ‘열심히 일한 후 여유를 즐기는 것’이 아니다. 진정한 균형은 긴장을 유지하되 그것에 지배되지 않는 상태, 여유를 즐기되 자신을 잃지 않는 상태에서 만들어진다. 긴장은 나를 세우는 힘이고, 여유는 나를 치유하는 시간이다. 이 둘이 동시에 작동할 때, 삶은 비로소 흔들리지 않는 리듬을 갖게 된다. 댐의 균열을 막는 것은 완전한 긴장이 아니라, 긴장과 여유의 조율이다. 우리가 늘 깨어 있어야 하는 이유도, 바로 그 조율을 잃지 않기 위해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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